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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그리고 박근혜 정치사화(史禍)의 희생양 홍문종(洪文鐘)!

김정겸 전)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겸임교수

시대일보 | 기사입력 2022/12/05 [16:50]

왜곡, 그리고 박근혜 정치사화(史禍)의 희생양 홍문종(洪文鐘)!

김정겸 전)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겸임교수

시대일보 | 입력 : 2022/12/05 [16:50]

 김정겸 교수

왜곡[歪曲]은 “사실과 달리 그릇되게 하거나 진실과 다르게 함”으로 정의된다. 歪曲의 歪(왜)는 ‘아니다’의 의미인 부(不)와 ‘바르다’의 의미인 정(正)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왜(歪)는 “바르지 않다”는 뜻이다. 영어로 distortion인데 이는 ‘찌그러짐, 일그러짐’을 의미한다. 사람의 얼굴이 찌그러지거나 일그러져 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보기 흉하다.      

 

정치권에서 왜곡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무런 도덕적 부끄러움 없이 자행되어 지고 있다. 왜곡은 편향된 사고이다. 편향(偏向)은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뜻이다. 왜곡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렇다’고 믿는 편향적 사고이다. “당연함”에 대해 의심하는 자세를 갖어야 한다.      

 

메소포타미아인은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인은 항해를 하면서 지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믿지 않았다. 신 중심의 세계에서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을 지지한다. 이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언급하면서 왜곡되기 시작한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회(Copernican Revolution)라는 것이 있다. 이는 왜곡에 대한 의심을 통해 이루어진 위대한 사고의 전환이다. 혁명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이라는 말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저당 잡힌 주장을 할 경우에 사용되는 언어이다. 예를 들어 지동설을 지지한 지오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는 화형까지 당한다. 이는 왜곡에 대한 좋은 예이다. 왜곡의 긍정적 모습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왜곡의 부정적 모습은 질타와 질투, 그로인한 파멸만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 왜곡에 대한 의심을 바로 잡을 힘이 필요한 시기이다.      

 

필자는 이쯤해서 홍문종(洪文鐘) 전 의원에 대한 왜곡, 그리고 박근혜 정치사화(史禍)의 희생양 홍문종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과연 그가 힁령이나 잡범의 파렴치한으로 취급을 받어야 하는가? 이다. 그는 파렴치한이 아니라 정치범이다. 그는 정치적 희생자이지 범법자라고 할 수 없다. 그저 정치적 “사화”의 희생자일 뿐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희생물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요직에 있었던 정치인들을 전부 뇌물 수수 등의 제목으로 차례대로 교도소로 보냈고 마지막 남아있던 홍 전 의원을 정치적으로 재판을 내렸다. 분명한 것은 학교발전을 위해 20억 정도를 기부하였지만 왜곡된 정치재판의 판결은 힁령이었다.        

 

이제 왜곡과 의심에서 벗어나자. 한 사람의 인격까지 말살하는 왜곡과 의심은 성숙한 시민의식 성장에 걸림돌 역할을 할 뿐이다. 특히 의정부 지역 정가에서는 홍문종에 대해 네거티브 프레임을 거두어야 한다. 교육학자로서 홍문종은 의정부의 지역대학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한 지역에 2개의 대학의 병립은 발전적 경쟁을 통해 지금의 대학을 있게 하였다. 의정부시가 교육도시로 자리메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설립자들의 학교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학교가 존립 될 수 없다. 또 정치가로서 홍문종은 의정부 지역 발전을 위해 큰 힘을 쏱았다. 의정부 지역에서 4선의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정부 시민들이 홍문종의 일 잘하는 능력과 추진력을 그만큼 인정했기 때문이다.      

 

왜곡과 의심에서 벗어나 화합으로 갈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화합은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나타난다. 공감은 역지사지를 의미한다.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 상(上)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비롯된 역지사지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영어는 참 재미있게 표현한다. 역지사지는 “Put yourself in my shoes”로서 자신의 발을 남의 신발 속에 넣어 보는 것이다. 얼마나 어색하고 아프겠는가? 공감은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은 약(藥)이며 마술사이다.      

 

명심보감의 글귀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명심보감에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이라는 말이 있다.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는 ‘술과 밥을 사줄 때 형, 동생 하는 사람이 천 명이나 있다'는 뜻이다.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는 '급(急)하고 어려울(難) 때 막상 나를 도와주는 친구(朋)는 한 명도 없다.’라는 말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귀이다. 우리 민족은 넘어져서 아파하는 사람을 짓밟지는 않는다.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힘을 주는 그런 민족이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제대로 사실을 파악하고 그에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였으면 좋겠다. 왜곡과 의심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었으면 한다.          

 

참고로 필자는 홍문종 전 의원과의 만남이 어떤 조건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그 점을 홍 전 의원도 매우 안타까워한다. 필자는 솔직하게 털어놓은 홍 전 의원의 정치철학과 교육철학이 필자와 같다고 생각해서이고, 이제까지는 필자가 남을 빛나게 해주기만 했다면 앞으로는 필자를 빛나게 해줄 수 있는 지역의 선배라는 강력한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마음을 같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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