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3일 ‘이재명은 안된다’라는 현수막 게시 불가 판정을 번복했다. 편파 논란이 거세지자, 해당 현수막 허용 여부를 재논의한 결과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오후 5시쯤 노태악 위원장 주재로 회의를 열어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의 허용 여부를 재논의했다. 2시간여의 회의를 마친 후 선관위는 “사회 변화와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 254조(선거운동 기간위반죄)를 운용하기로 확인했다”며 “이에 따라 선관위는 현재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부분이 단순한 정치 구호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공직선거법 254조의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재의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에 따른 궐위 선거를 전제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어 선관위 전체 위원 회의에서 이 사안을 신중히 검토한 것”이라며 결정 번복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선관위는 조국혁신당이 지난 11일부터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부산 수영구) 지역구에서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 공범이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자, 정 의원이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을 게시하려 했지만, 게시 불가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선관위는 당시 “해당 현수막들이 특정 후보의 당선 또는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판단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조기 대선’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은 이 대표의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반면, ‘정연욱 내란 공범’은 다음 총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낙선 목적의 사전 선거운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정치적 편향성은 말할 것도 없고, 미래 상황에 대한 자의적 판단은 선거 사무를 총괄하는 국가기관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할 지경이다. 더욱이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선거까지 남은 시간을 근거로 판단을 달리하는 건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사기에도 충분하다.
급기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지 않았는데 선관위가 조기 대선이 벌어질 것을 전제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냐”며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탄핵 인용이란 결과뿐 아니라 민주당 후보를 이재명으로 기정사실화하는 편파적인 해석”이라는 국민의힘 비판도 일리가 있다.
이에 앞서 중앙선관위 김용빈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 전체 회의에 출석해 “그런 잠정적 조치를 한 것은 섣부른 결정이었고 물의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 사무총장은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 현수막의 게시 불가 판정이 아직 유효한가”라는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의 질의에 “아니다. (불허) 조치는 보류된 상태”라고도 했다.
해당 게시물 허용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선관위의 편파성 논란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내로남불’, ‘위선’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제작했으나, 선관위는 이 문구가 민주당을 연상시킨다며 금지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대장동 부패 게이트 특검 거부하는 이가 범인’이란 피켓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진짜 몸통은 설계한 이다!’는 문구는 ‘이’가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를 연상케 한다며 사용 불가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선관위는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을 책임지는 헌법기관이다. 헌법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독립된 헌법기관 지위를 부여한 것은 공직선거의 공정성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선거 절차와 결과의 정당성이 의심받으면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중차대한 시국이니만큼 이럴 때일수록 오로지 법과 규정에 따라 어느 정파로부터도 유불리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제기되지 않도록 정치적 중립을 지켜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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