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수확을 끝낸 우강 평야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1979년 10월 26일 오전 11시. 박정희 대통령을 태운 헬기가 당진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현장에 도착했다.
손수익 충남지사가 대통령을 영접, 행사장으로 안내했고 그 뒤를 이효익 농림부 장관,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 장영순 국회의원이 뒤따랐다.
대통령은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농민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손 지사에게 ‘저분들 중에 제일 나이 많은 노인을 모셔오라’라고 했다. 대통령은 초록색 ‘새마을’ 모자를 쓴 노인이 가까이 오자 올해 농사는 잘했느냐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테이프 커팅을 할 때도 옆에 서게 하였다.
그런데 이날 불길한 일이 벌어졌다.
삽교천 담수비를 제막하는데 강한 바람에 천이 벗겨지지 않고 기념비를 휘감아버린 것이다. 대통령과 관계자들이 아무리 끈을 잡아당겨도 소용이 없었다. 사전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예행 연습까지 했는데… 참석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경호원들이 달려가 천을 벗기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도 사람들의 귀를 의심할 정도로 힘이 없었다. 연설 때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다 더 특별한 사건은 오찬 장소인 아산 도고 호텔에서 발생했다.
대통령을 태운 헬기가 호텔 마당에 착륙하자 호텔 후원에 사육하던 새끼를 밴 암사슴이 그 프로펠라 소리에 놀라 날뛰다가 철망에 머리를 박고 죽은 것이다.
대통령 수행원들은 사슴의 죽음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기로 했으나, 그 ‘불길한 징조’는 참석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오찬을 마친 박 대통령은 헬기에 탑승, 오후 2시 서울로 떠났다. 그 헬기에는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이 함께 동승했다.
박 대통령은 헬기 기장에게 그가 가장 존경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현충사 상공을 한 바퀴 돌게 하였다. 현충사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박 대통령은 매우 흐뭇해 보였다.
청와대로 돌아온 박 대통령은 각종 보고서를 훑어보고 몇 가지 서류도 결재를 했다. 이어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궁정동 안가에 저녁상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오후 6시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이 자리에는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그리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함께 했다.
식사는 비빔밥, 떡만둣국, 술안주로 전복찜, 송이버섯이 준비돼 있었고 술은 양주로 시바스 리갈.
식사 중간에 가수 심수봉과 신재순이 기타를 메고 들어왔다.
7시 TV에서 박 대통령의 삽교천 방조제 준공 기념행사가 보도되자 잠시 뉴스를 시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삼 의원의 제명 파동과 부·마 사태(부산과 마산에서 계속되는 학생 시위)에 화제가 옮겨가자 금세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차지철이 부마 사태 수습을 못 하고 있는 것을 전적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책임으로 돌리며 인격적 모욕의 언사를 서슴지 않자 분위기는 폭발 임계점까지 치솟았다.
그러자 김재규가 벌떡 일어나 바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이 버러지 같은 것” 하며 차지철을 향해 발사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오른쪽 가슴을 쏘았고, 박 대통령은 힘없이 얼굴을 떨어뜨렸다.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0분 그렇게 박 대통령은 61세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박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45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그동안 참으로 많은 정치적 격변이 있었고, 9명이나 되는 대통령이 거쳐 갔지만, 또한 유신 체제 등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대부분의 국민 선호도 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왜 그럴까? 박 대통령 서거 45주년을 맞아 깊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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