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북한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1949년 5월, 소련 모스크바로 스탈린을 방문했다. 이때 그의 나이 39세.
그는 스탈린에게 북한 경제를 위해 5,000만 불 차관을 요청했다.
김일성은 그 자리에서 따로 스탈린과의 비밀회담을 갖고 남한 해방을 위해 무력 침공을 승인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남한에 미군이 주둔해있는 한 전쟁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30일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전문을 보내 ‘귀하가 요구한 것에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만나자’라고 제의했다.
김일성은 1950년 3월 모스크바로 달려가 세 차례 스탈린과 비밀회담을 했다. 스탈린은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를 시작했고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으며 남한에 빨치산 활동이 왕성한 점을 들어 남침을 승인했다.
그러면서 모택동의 중공군이 장개석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것도 기회라고 했다.
스탈린은 남한 정부에 대해 위장 평화안을 제안하여 남한이 거부하는 것을 계기로 기습 공격을 할 것과 부대이동과 작전을 기계화하여 신속히 진행하며 소련 고문단을 파견할 것도 명시했다. 심지어 구체적인 남침 루트까지도 작성해주었다. 그 작전 루트는 소련이 나치 독일 침공 때 사용했던 것과 같았다.
김일성은 감격하여 3일 이내에 남한을 통일하겠다고 다짐하며 평양으로 돌아왔다.
김일성의 북한군은 스탈린의 지시대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에서 기습적으로 총공격을 개시했고 손쉽게 서울을 점령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국군이 후퇴하면서 한강철교를 폭파시켰기 때문에 남침의 속도가 멈춘 것이다.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강을 건널 수 있는 도하 장비를 보내달라고 긴급 요청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끌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은 서울에서 3일간이나 머물러야 했으며 3일 이내 한반도 통일을 하겠다는 장담은 수포로 돌아갔다.
왜 스탈린은 도하 장비 지원에 시간을 끌었을까? 그 꿍꿍이속은 무엇이었을까? 다만 1952년 스탈린이 중국 모택동으로부터 휴전하자는 제의를 받고 이를 거절한 것으로 그 숨은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탈린의 계획은 미국이 한국전쟁의 수렁에 빠져나오지 못 하게 하고 그동안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한국전이 휴전된 것은 스탈린이 죽은 후에 가능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소련은 6·25 발발 직후 UN 안보리에서 미국이 제안한 한국전에 UN군 파견을 결의할 때도 회의에 일부러 불참하여 결과적으로 통과를 도왔다. 왜 그랬을까? 그때도 스탈린은 한국전에 미국을 끌어들여 유럽에 손을 못 쓰게 하는 것이 음흉한 속셈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해제된 외교문서, 그리고 미국 기관의 보고서 등에 상세히 나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탈린의 후계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그를 맞이하는 김정은은 6·25를 일으킨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과 거의 같은 나이에다 성격마저 비정상적이다.
그러니 이들이 평양에서 만나 또 무슨 음흉한 흉계를 꾸몄을까?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정찰위성 실패로 체면을 구긴 김정은이 미사일 기술 지원을 요구할 것이고 푸틴은 또 어떤 도발을 부추겼을지 모른다. 스탈린과 김일성이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은 방화범 같은 전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변평섭의 세상 이야기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