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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의 횡단여행]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양안을 오간 북미대륙 횡단

시대일보 | 기사입력 2023/05/28 [22:25]

[전운성의 횡단여행]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양안을 오간 북미대륙 횡단

시대일보 | 입력 : 2023/05/28 [22:25]

▲ 전운성 횡단여행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시대일보]퍽이나 오래 전의 북미대륙 횡단이야기이지만, 오늘 그 생생한 기억을 꺼내어 본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 차를 몰며 북미대륙 어딘가 달리고 있는 양 착각하곤 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대륙횡단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뉴욕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뉴헤이븐 소재 예일대학에서 1년을 보낸다. 이때 가족과 함께 북미대륙의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 등 3개국을 네 번이나 자동차로 횡단하면서 대략 8만2천km 릿수로 20만 5천리 되는 먼 거리를 일주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는 농업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그 나라의 지형지물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해당국가의 농업사정을 아는데 첩경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도미하기 전부터 북미대륙 횡단을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과거 어떤 사람들이 대륙을 횡단했나 알아본다. 모두 잘 아시다시피, 1803년 프랑스로부터 거대한 루이지애나 주를 사들이고, 매켄지의 캐나다 횡단성공 얘기를 들은 받은 제퍼슨 대통령은 루이스 대위와 클라크에게 태평양까지 탐사하고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군인 등 30여 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꾸려, 1804년 5월에 횡단 도전을 시작한다. 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2년 3개월 뒤에, 인디언 지역과 험준한 록키산맥을 넘어 태평양이 접한 오레곤까지 갔다가 출발했던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들이 펴낸 불굴의 용기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서부개척을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되었지만, 이곳의 원주민 인디언에게는 시련의 신호탄이었다. 이러한 원정대의 대륙왕복 횡단 성공은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탄 메이플라워가 보스턴 근교 플리머스에 닻을 내린 1620년 이후 186년 만의 일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먼저 뉴헤이븐을 중심으로 미국 역사의 산실인 미동부의 여러 곳을 야금야금 방문하기 시작한다. 뉴욕을 시작으로 미국의 유수대학들이 자리한 보스턴, 독립을 선언한 필라델피아와 남북전쟁의 분수령이 된 게티스버그 전투 현장 그리고 수도 워싱턴 등은 여러 번 찾아 미국 건국초기 역사를 이해한다.

 

그리고 점점 범위를 넓혀 미·캐 국경을 넘어 빨간 머리 앤의 배경이 된 프린스 에드워드 섬과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 등을 찾아 헤밍웨이의 작품 바다와 노인이 주는 메시지를 음미한다. 도중에 플로리다의 우주기지와 디즈니월드를 찾아 상상력을 얻기도 한다.

 

드디어, 우리는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12월 방학을 맞아 애초 계획했던 본격적인 대륙횡단에 나선다. 미국의 경우 동서 약 4,500km, 남북 2-3,000km 거리로 만만치 않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거기에 미·멕국경을 넘어 남쪽으로 2,000km 이상 떨어진 멕시코시티까지 다녀 올 계획도 세운다.

 

그리고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자,,, 출발이라는 소리와 함께 긴 여정에 오른다. 그리고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와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라는 찬송과 곡을 대륙횡단가로 삼아 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힘을 얻는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예상치 못한 많은 일을 만난다. 반복된 타이어 펑크, 여러 번의 엔진오일 교환과 고장, 곰 등의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숲속 캠핑과 적막한 노상휴게소에서 잠자기, 살벌한 미·멕 국경지역 넘나들기, 급변하는 날씨로 주먹만한 돌덩이 같은 우박세례, 곁을 지나는 토네이도, 황량한 사막에서의 기름부족, 아슬아슬한 좁은 절벽 길 등으로 조바심을 태울 때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위험스러움을 넘겼다.

 

▲ 북미대륙 일주여행 루트



이렇듯 짜릿한 횡단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수많은 소회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북미대륙의 중서부는 거대한 식량공급지임과 동시에 그랜드 캐니언 등과 같은 자연의 보고로 이를 보는 순간 황홀감과 숙연함이 동시에 찾아 왔다.

 

또한 캐나다 대초원을 버스로 며칠간 달리다가, 만난 도시의 고층건물이 얼마나 그리우면 ‘오, 나의 문명 도시여~’라며 박수와 환호성을 지르는 현대인의 모습도 이해되었다. 이처럼 필자는 시공간상의 모든 물체를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북미 전지역을 훝어 보려는 강한 심적 카리스마가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가난에 허덕이던 빈곤국가임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독립운동, 이민, 유학, 예술공연, 관광 등으로 대륙을 횡단하며 꿈과 희망을 키워가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 춘천 출신으로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함기용 선수는 건국 초기의 어수선함 속에 용기와 희망을 준 대륙횡단의 낭보였다.

 

아무튼 우리가족은 대륙일주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왔다. 이에 북미대륙 육로횡단을 일생에 한번이라도 해보는 일을 꿈이자 도전으로 생각하는 여타 미국인들과 마찬가지였던 뮤필드 마을의 이웃들은 많은 걱정을 했다면서도, 우리의 용기에 놀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럼, 여러분의 좋은 여행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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