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 고로 인간이다" … 생각 없이 산다면 존재가치가 없다

[데스크칼럼] 유 의 호 편집국장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0/10/04 [16:30]

"생각한다 고로 인간이다" … 생각 없이 산다면 존재가치가 없다

[데스크칼럼] 유 의 호 편집국장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0/10/04 [16:30]

▲ 유의호 편집국장

 죽기위해 태어나서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죽자 사자’ 살거나 그래도 태어났으니 ‘죽자 사자’ 살아가야 하는 인생살이가 참으로 애처롭다.

 
결국 죽기위해 살아야하고 살기위해 불나방처럼 불속으로 몸을 내던져야 겨우 살아가지는 삶이 인생의 목적은 아닐 터인데... 죽지 못해 사느냐? 태어났으니 사느냐?

 
이 물음을 원론으로 여겨 해답을 찾는다면 답은 없다. 답이 없음에도 끊임없이 이를 화두로 삼고 살아간다면 최후는 절망속의 절규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삶, 또한 스스로 절망하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꽉 막힌 삶속에서 아주 습관처럼 아침에 눈뜨고 저녁에 눈감음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위해 먹는지보다 먹어야 되기 때문에 온종일 아니 인생의 전부를 먹이 사냥하는데 힘을 쏟는다.

 
인생은 늘 배고프다 평생 채울 수 없는 뱃고래가 시도 때도 없이 보채며 뱃고동(?)을 울려댄다.

 
내가 뱃고래를 위해 태어났던가!

 
우리인생은 뱃고래 충족여부에 따라 ‘희로애락’이 결정된다.

 
사실 삼시세끼는 지금 같은 세상에 가장 적게 드는 비용 중에 하나인데 왜 아등바등 하며 ‘천석군…만석군’ 이 되겠다고 내 전부를 투자하는 것인지…

 
‘의식주’ 옷, 밥, 집이 해결되면 성공한 인생이고 그 성공을 위해 인간은 일생을 투자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밥세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은 동물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사람은 동물이지만 고등동물이다.

 
고등동물로서 할 짓이 동물처럼 먹고 자고 새끼 낳고 자신과 가족 지키는 본능에만 충실하다면 우월적 지위의 동물에 불과하다.

 
동물은 형이하학(形而下學)적이고 고등동물은 형이상하학(形而上下學)이다.

 
하학은 눈에 보이는 먹고 사는 것이라면 상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 먹고 사는 것으로 보면 옳다.

 
‘사람은 생각한다 고로 사람(존재)이다’

 
생각의 뱃고래를 충족시키면 무한한 창의성이 발휘되고 소위말해 인간이 신의 영역까지 손을 뻗칠 수 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신의 명령을 어기고 신의 세상에서 쫓겨났다.

 
신은 쫓아낼 때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중 하나같이 됐으니 저들이 또 다른 생명과일을 따먹으면 영생의 반열로 들여설것이니 저들을 내어쫓자’

 
인간은 경의 말대로라면 에덴동산에서 신처럼 영생할까봐 쫓겨났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말이다.

 
이를 근거로 인간을 논하자면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신에 의해 박탈 된 셈이다.

 
그런 인간이 세상에 정착 된 이후 작금의 삶을 살펴보면 신이나 영생은 포기한지 오래이고 인간으로서 가치관이나 능력이 온통 형이하학적 사고에 갇혀 버렸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자신이 누구인지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신처럼 살아야 할 인간이 신이 되지 못한 채 서로 치고 받으며 ‘양육강식’하며 인육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밟아야 되고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살육·도륙을 일삼으며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하려고 애를 쓴다.

 
‘더불어 함께사는냐 지배한 뒤 주인으로 사느냐’ 답은 주인으로 사는 것을 너나없이 택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내가 시장이 되면… 선출직들이 하나같이 선출해준 이들을 지배하려한다. 그 지리에 오르려는 이유가 결코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다.

 
언행불일치를 따지면 ‘내로남불’이다.

 
세상에는 답이 없다 오직 무덤뿐이다.

 
죽기위해 태어난 인간이 이를 부정할 이유를 찾지 못하다보니 최후에 자기부정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나라와 나라’ ‘이념대 이념’ ‘종교와 종교 간에’ 전쟁을 일으키고 갈등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자기합리화 자기중심 속에서 자신을 바로미터로 표준화한 사람들은 그 길에서 이탈 할라치면 극단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지배하며 살던 권력자가 자칫 뭇 사람들에게 민낯을 보이게 된다거나 심판대에 서게 된다면 이를 견디며 극복하지 못한다.

 
인간은 미완이며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기에 ‘초록은 동색’이다.

 
누구나 잠재적 범법자가 아닌 범죄자이며 앞으로도 범죄자다.

 
이는 새상종말을 고할 때까지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유와 판단은 각자가 유추해 보겠지만 해답은 박사장이 살아야하는 이유보다 죽어야 살겠구나 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일 게다.

 
살아있으나 죽은 사람이 있다. 이 문제에 고민이 있었을 듯 싶다.

 
하지만 만일 명예롭지 못한 죽음이라면 죽어도 죽은 것이다.

 
또한 목숨은 스스로 결정할 ‘자기결정권’을 어떤 신도 허락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떳떳하고 억울해서 결벽을 주장키 위해 자결한 사람이 있다면 자결하는 순간 결벽은 묻히는 것일 뿐 인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련의 사태나 인간 삶이 목적도 없이 죽자 사자 식으로 산다면 종국은 주검과 독수리 떼가 기다릴 뿐이다.

 
인간의 생각은 존재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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