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길’이나 안 가본 ’길’이나

[데스크칼럼] 유의호 편집국장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0/08/04 [16:52]

가본 ‘길’이나 안 가본 ’길’이나

[데스크칼럼] 유의호 편집국장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0/08/04 [16:52]

 

 

▲ 유의호 편집국장     ©

보수당 ‘과유불급’이 ‘禍自招'했던 것 
진보당 180여석의 주인은 국민 … 교만은 패망의 선봉

 

보수당이 60여년을 안보를 방패삼아 집권 했을 때나 진보당이 거여 상황 하에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역방향 질주를 놓고 양당의 헛발질은 ‘도진개진’이다.

 
가본길이나 안가본길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먹던 밥 먹던 반찬에 익숙한 탓에 작금의 상황이 ‘듣보잡’처럼 여겨지겠지만 국민이나 국익보다는 당리당략은 보수·진보 모두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이래도 저래도 달라질게 없다보니 60여년의 집권보수당 보다는 혹시나 천지개벽을 염두에 둔 유권자들이 압도적 절대 다수로 민주당을 밀어줬지 않나 싶다.

 
있는 자들에게는 평화로운  세상을 갈구하겠지만 없는 자들은 아무리 가난을 벗어나려고 애를 써봐도 ‘부익부 빈익빈’인 세상이고 보면 차라리 세상이 뒤집어졌으면, 전쟁이나 터졌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갖게 되듯이 말이다.

 
있는 자들에게는 일상이 희망이고 혹 행복일런지 모르겠으나 없는 자의 일상은 초조와 불안 절망감뿐이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출발점과 함께 태동됐지만 자본에 의한 상중하류의 계층에 따라 계급사회로 나아가다보니 주종간의 갑과을 관계가 저절로 형성돼 밟는 자와 밟히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은 바로 이같은 먹이사슬 구조를 얼마나 슬기롭게 정치적으로 해결해 주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며 지향해야 할 목표다.

 
하지만 보수나 진보. 그 어느 쪽도 민주주의를 표방만 했을 뿐 민주화를 위한 자기희생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보수 60여년도 정권유지 차원의 일방독주로 최종, 박근혜 탄핵과 함께 보수 궤멸이라는 참담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말았다.

 
국민은 변화를 원한다.

 
아무리 시국이 어떻고 남북관계와 긴장의 연속이더라도 이를 딛고 새로운 미래가 열리길 기대한다.

 
60여년 동안 안보 속 경제발전을 모토로 장기 집권의 맥을 이어 갔지만 국민에게 신선함 또는 충격적인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한 채 안주하며 권력에 도취돼 분별력마저 상실해 버렸다.

 
다시 말해 안보팔이 동력의 60년의 막을 내렸다.

 
지금 통합당은 아직도 자신들의 위치나 방향도 설정하지 못한 채 당명만 계속 바꿔나가고 있다.

 
왜 민주당으로 범여권으로 180여석의 의석이 흘러갔는지 제대로 된 분석도 못하고 있다.

 
통합당은 총선 직전까지만 해도 이 같은 현실을 마주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이유는 지난 60여 년 동안 집권 하면서 새로운 한강의 기적이나 희망의 뱃고동 소리를 선사하지 못한 채 국민이 뽑은 자기들 대통령마저 자기들 손으로 팔아먹었다는데 있다.

 
그런 자들에게 표를 던질 유권자가 얼마나 있을까?

 
갖가지 이유와 변명을 늘어놓아도 답은 버킹검이다.

 
그 당시 새누리당과 소속의원들 전원은 대통령과 함께 탄핵됐고 하나같이 정계에서 떠났어야 했다. 자기들끼리 책임전가하고 당 만들고 당명이나 바꿔 그 나물의 그 밥상을 차려놓았으니……. 그나마 보수의 재건을 바라는 보수진영의 유권자에 의해 100여석이라도 건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조급해선 안 된다. 자칫 그마져도 깨질 수 있다.

 
깊은 상처는 한꺼번에 치유가 되는 게 아니고 막연한 기대도 절대금물이다.

 
민주당은 경쟁 당이던 통합당을 끌어들여 탄핵에 동참시킨 덕분에 문재인 정부를 열었고 절대다수의 집권당이 된 것은 ‘地風’ 이 아니라 ‘天風’ 으로 여길만하다.

 
그 정도 실력(?) 이면 집권당 자격이 충분하다. 다만 앞서 새누리당이 왜 처연할 정도로 망가졌는지를 되새겨 봐야한다.

 
국민의 뜻에 반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잘해서 집권당이나 대통령을 배출해 낸 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지만 고백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은 변화를 바라고 있다. 그 변화는 국민의 바램에 부응하는 변화여야 한다.

 
아무리 봐도 부동산정책 등 어설픈 게 한둘이 아닌가 싶다.

 
부자든 가난한자든 함께 지금보다 더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줘야한다. ‘부자증세’ ‘빈자감세’ 식의 정책은 50%만의 충족이라는 것이고 50%는 불만을 갖게 하는 초등생 산수방식 일뿐이다.

 
60년 아성이 하루아침에 밤새 안녕을 고했다.

 
남의 눈물이 나의 웃음이 된 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새누리당까지 이어져온 보수당이 60여년의 금자탑을 쌓은 것은 누가 뭐래도 국민이 함께 쌓은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치 말아야 한다.

 
민주당은 100년대계의 아성을 쌓으려면 국민의 공감대 속에 국민과 함께 삽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차 어느 당이 집권당이 되든 국민을 ‘을’이나 ‘졸’로 보고 국민위에 군림해서는 ‘사상누각’이 될 뿐이다.

 
작금의 총선을 마치고 국회가 원구성과 함께 현안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본 길이나 안 가본 길이나’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힘이 있는데 기술이 뭐가 필요하냐’는 오만함이 그대로 흘러 넘치는듯해 힘 있는 자의 여유로움은 찾아볼 수가 없어 오히려 ‘참 없어 보인다’는 사실을 간과치 않았으면 싶다.

 
숫자를 힘의 원동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이용하지 말고 정작 ‘필수불가결’할 때 활용해야 한다. 그 숫자는 국민의 힘이자 국민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고 이를 자칫국민으로부터 부여 받은 자신들의 권력으로 착각한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며 또 한번 지난 정권의 전철을 밟게 됨을 유념하기 바란다.

 
지난정권은 ‘과유불급’ 즉 교만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으며 따라서 숫자는 움켜진 자의 교만을 배려하지만 그 숫자를 제공한 국민은 국민이 교만해지길 바래서다 주객이 전도 되지 않았으면 싶다.

 

 

  유  의  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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