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군사정권 시절 서울에 있는 K 대학교 남자 화장실에 이런 낙서가 발견되어 소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학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육사가 있으며, 육사 위에 보안사, 보안사 위에 여사(女史)가 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 부인을 ‘여사’로 통칭했는데 보안사 파워가 막강했지만, ‘여사’의 권력이 더 막강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 이런 낙서도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한다고 자랑 마라. 아버지 잘 둔 놈 못 당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부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깨끗하다는 언론기관에서도 군사정권 당시 군 고위층의 인척간에 있던 지방신문 기자가 서울의 명문 신문사 기자로 전입하는 특례가 있을 정도였다. 공채 시험의 당당한 합격자 아니면 문 앞에도 못 가던 전통을 자랑하던 언론사가 이랬으니 여타 정부 기관이나 공기업은 어땠을까.
로마 제국, 대영제국 등 서구 강대국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패전국 포로와 국민들을 노예로 끌어다 일을 시켰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 등 UNESCO의 보호를 받는 거의 모든 문화재들이 이들 노예의 피맺힌 손끝에서 이루어졌다. 건축물뿐 아니라 도로를 돌로 깔아 일찍부터 포장도로를 자랑했는데 이 역시 이들 전쟁에 잡혀 온 포로들을 노예로 만들어 투입한 덕분이다. 그 매끈한 도로 위를 귀족과 장군들의 마차가 달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역사 이래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 전쟁을 한 일이 없어 포로를 잡아다 노예로 삼은 일이 없다. 오히려 병자호란 때는 우리 많은 여성들이 청나라로 끌려갔으며, 임진왜란 때는 많은 도공(陶工)들이 잡혀가 일본 도자기 문화는 꽃을 피웠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잡혀간 도공들을 우리 정부가 귀국 교섭을 벌였음에도 많은 도공들이 귀국을 거부하고 일본에 머물러 살겠다고 했다. 그들은 왜 조국을 거부한 것일까? 그것은 ‘신분 차별’이다. 일본에 잡혀 와보니 도공의 신분 대우가 높았는데, 조선에서의 하층 계급 취급과는 정반대였던 것.
조선은 양반 계급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토색질이 극심했다.
황희(黃喜) 정승 하면 조선 역사를 대표하는 문신으로 18년간이나 영의정을 했던 유일한 인물로 존경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는 서달이라는 사위가 있었다. 그는 지방 관아의 아전이 자기 장인이기도 한 황희 정승을 길에서 인사를 잘못했다고 몽둥이로 때려 죽게 했다.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황희가 나서서 수습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갔다. 나중에는 세종대왕까지 알게 되어 황희에게 면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도 7일 만에 다시 복직 발령을 냈다.
그렇게 미천한 사람은 맞아 죽어도 인권을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경우 처벌 규정이 있었으나 신분에 따라 달라졌고 더욱 황희 정승의 사위라면 관찰사도 함부로 못 했다.
조선 전기 태조에서부터 선조에 이르기까지 과거시험 문과 급제자가 4,527명이고 그 가운데 신분이 낮으면서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1,100명이었다. 그러나 신분이 낮으면서 과거에 합격한 사람 중 3품 이상에 오른 사람은 조선 역사 500년을 통틀어 306명에 불과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세도, 문벌 가문이 득세하면서 그 두꺼운 층을 뚫고 올라갈 용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안타깝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힘들다. 태어날 때부터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거의 평생 흙수저를 면치 못하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 앞길이 순탄하다는 것.
청빈한 공직자처럼 처신하던 사람도 청문회에 서게 되면 어린 아들이 벌써 수십억 아파트나 농지 소유주가 되어 있음이 밝혀지기도 하고, 서울 강남에서는 의사가 되기 위해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의과대학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 과외를 받기도 한다.
지난 2025년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입학생 1,187명 중 SKY(서울대, 고대, 연대) 출신이 55.5%나 되었음은 무엇을 뜻할까?
결국 모든 분야의 경쟁에서 흙수저는 금수저에 밀린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질 않고, 개천의 물은 말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와야 건강한 나라가 된다고 하는데 현실은 그러질 못하다. 개천에 맑은 물이 넘쳐야 용도 나올 텐데 썩은 물속에 어떻게 용이 나오겠는가? 이제 ‘AI 시대’가 전개된다는데 금수저와 AI가 나쁜 쪽으로 결합되면 어떤 사회가 될까 정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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