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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의 세상 이야기] 피에트로 검사는 왜 정치에 실패했나

시대일보 | 기사입력 2025/07/21 [12:43]

[변평섭의 세상 이야기] 피에트로 검사는 왜 정치에 실패했나

시대일보 | 입력 : 2025/07/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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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평섭 논설고문.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시대일보]영화 ‘대부’(代父)의 무대가 된 미국 뉴욕 암흑가를 지배하는 것이 이탈리아 마피아다. 그만큼 마피아의 조직은 국가 공권력이 도전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막강했다.

 

그런데 1992년 이 거대한 마피아 조직에 칼을 댄 검사가 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지방 검사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당시 42세의 젊은 검사 피에트로는 겁 없이 마피아 두목을 구속하는 등 마피아와의 사투를 전개했다. 마피아 거물들을 구속할 때는 TV 생중계를 하여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물론 마피아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피에트로 검사의 출근길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등 수없이 살해 위협을 받았다.

 

정부와 국회 집권당, 경제계로부터도 마피아 수사에 손을 떼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사실 정치계는 물론 세무서, 경찰 등 이탈리아는 크게 부패해 있었다. 집권당 경리국장 집을 압수수색하니까 7백만 리라의 현금 봉투가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깨끗한 손’(mani pulite 마니풀리테) 운동.

 

이 ‘깨끗한 손’ 운동이 시작되면서 4천 5백 명의 정치인, 관리, 마피아가 기소되고 이 중 1천 2백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어떨 때는 한 달에 9백 명이나 기소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탈리아 국회는 문을 닫아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되자 피에트로 검사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그래서 국민의 뜨거운 응원으로 기민당의 거물 국회의원 카라를 구속할 수 있었고 ‘깨끗한 손’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었다.

 

티셔츠, 맥주컵, 열쇠고리 같은 물건에 피에트로 검사의 초상화를 넣을 정도가 되었다. 정당 4개가 해산될 정도로 태풍처럼 휩쓴 ‘깨끗한 손’ 운동은 마침내 이탈리아의 제1 공화국 체제를 붕괴시켰으며, 제2 공화국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피에트로 검사 자신이 국민의 인기를 업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1994년 ‘가치의 이탈리아’라는 이름의 정당을 창당한 것이다. 그의 첫 정치적 성과는 유럽의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정당은 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계속 야당으로만 머물러야 했다. 거물 정치인, 마피아 두목 등을 구속하는 등 검사로서 보여준 수사력과 정치는 달랐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가 정치를 시작하면서 이탈리아의 부패는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베를루스코니 같은 인물이 총리가 되어 권력과 재벌, 언론까지 장악하여 국민적 불신을 받았다.

 

유능한 검사가 유능한 정치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

 

지난 6월 2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우울증으로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는 부인 김건희 여사의 휠체어를 미는 모습이 TV에 방영되었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페미니스트로서의 긍정적인 장면에 정치라는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에 그 장면이 착잡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검찰)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윤 전 대통령이 검찰에 있을 때 한 유명한 말이다. 어쩌면 이 말 때문에 그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고 대통령에까지 오른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검사의 문법’으로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언정 ‘정치의 문법’은 아니었다. 결국 12.3 계엄 사태를 일으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것도 ‘정치의 문법’에 거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정치 인턴 8개월에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대권에 오르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부인 김건희 여사의 휠체어를 밀고 가는 모습에서 이탈리아 검사 출신 피에트로의 몰락과 겹쳐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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