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변동하 기자] 시집 소개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분투하는 이들을 향한 희망의 노래
정세훈 시인의 시집 『고요한 노동』이 푸른사상 시선 198로 출간되었다. 현실의 불평등과 불의, 부조리함에 끊임없이 저항해온 시인은 이 시집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를 위한 투쟁의 노래를 부른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을 향한 공감과 연대가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온다.
시인 소개 정세훈 1955년 충남 홍성 출생. 17세 때부터 20여 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과 1990년 『창작과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 『맑은 하늘을 보면』 『저 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부평4공단 여공』 『몸의 중심』 『동면』 『당신은 내 시가 되어』 등과,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동시집 『공단마을 아이들』 『살고 싶은 우리 집』, 장편소설 『훈이 엉아』,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 그림동화 『훈이와 아기제비들』, 산문집 『소나기를 머금은 풀꽃향기』 『파지에 시를 쓰다』 『내 모든 아픈 이웃들』 등이 있다. 제32회 기독교문화대상, 제1회 충청남도올해의예술인상, 제1회 효봉윤기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인천작가회의 회장, 한국작가회의 이사, 인천민예총 이사장, 한국민예총 이사장 대행 등을 역임했고, 현재 노동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목차 제1부 고요한 노동 / 노동 / 몸이 몸을 어루만진다 / 꽃을 심는다 / 울먹이는 저물녘 / 노동자를 함부로 근로자라 말하지 말라 / 노동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라 하지만 / 너덜너덜 걸레처럼 찢긴 살점이 / 춘하추동 / 복사꽃 아픈 봄날 / 대명천지야! / 찔레꽃 진다 / 실감 나는 소리 / 저녁 / 밥줄 뺏긴 자리에 꽃밭이 들어섰다 / 인천의 흔적 / 구조조정 / 청천2동
제2부 석기시대 / 골목 / 힐끗 / 기러기 떼 / 웃음 하나로만 살아가야 한다면 / 삐뚤어진 마음 / 고사목 / 흙비 / 고작 / 맹꽁이가 우는 밤 / 코스모스 꽃길 / 폭염 / 절벽에서 / 이 봄날 저 봄꽃이 피는 것은 / 사월 눈발 / 광천 / 팽나무 재 / 꽃다발
제3부 집안 청소 / 새해 다짐 / 최고의 미인 / 강심 / 달동네 / 장롱 / 뾰족 바위 / 미소 / 심야 / 이상한 눈 / 심사(心事) / 밥다운 밥 / 건너편 공장 / 마음 편치 않은 날
제4부 밥통 / 광장의 시 / 그 이유를 말해주마 / 자본의 꽃 민주의 꽃 / 고려인의 왕, 김좌진 / 시가 되지 않겠습니다 / 시인 유덕선 / 여전히, 님은 민주의 선봉입니다 / 바람아 불어라 / 팔팔하고 창창한
작품 해설 : 어렵고 지친 삶을 보듬어 싹을 틔우는 일-이병국
시인의 말 시를 독학할 때부터 시 짓기에 앞서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이 시를 지어야만 하는가’라는 자문과, 그에 따른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그 자문에 확실 명쾌한 자답을 얻지 못하고, 명확한 목적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을 시에는 시를 짓지 않았다. 아울러, 나의 시 짓기는 절대로 시류와 영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을 아파하며, 세상에 희망을 심기 위한, 나만의 시 짓기를 완성하자고 다짐했다. 어쩌면 생을 마칠 때까지 그 다짐대로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시 짓기는 항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현실의 불평등과 불의, 부조리함 등을 끌어안아 집요하게 발언해야 한다. 이는 시인과 시의 의무이자 목적이다. 시는 결코,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틀에 박힌 문학 공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신념으로 또 졸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추천의 글 정세훈 시인은 열일곱 살 때 공장에서 작업하다가 안전사고로 참혹하게 즉사한 동갑내기 동료를 잊지 못한다. 소규모 공장들에서 일하다가 진폐증으로 작업장을 떠날 때까지는 물론이고 시를 쓸 때마다 그 일에 대한 슬픔과 분노에 목이 멘다. 그리하여 노동자를 살리지 못하는 시는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비정규직 노동자, 해직 노동자, 산업재해 노동자,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를 위한 투쟁의 노래를 부른다. “늙은 국수공장 주인”처럼 “낡은 국수공장 기계를/눈물로/방울방울 어루만진다”(「몸이 몸을 어루만진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바위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나무들과 같은 자세를 갖는다. 위장 폐업으로 문을 닫고 철거한 공장의 공터에 등 돌리지 않고 “노동을 하듯/꽃을 심는다”(「꽃을 심는다」). 생이 다할 때까지 노동의 뿌리를 지키겠다는 시인의 시들은 아프고 슬프지만 간절하고 애틋해서 따뜻하다.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노동하는 우리에게 위로와 아울러 연대의 힘을 준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작품 세계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첫 시를 발표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시인의 시적 수행은 이번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언급하다시피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을 아파하며, 세상에 희망을 심기 위한, 나만의 시 짓기”와 “현실의 불평등과 불의, 부조리함 등을 끌어안아 집요하게 발언”하고자 하는 “시인과 시의 의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나아가 “어루만져주지 않으면/안 되는/상처난 곳//그곳으로/온 몸”(「몸의 중심」, 『몸의 중심』, 삶창, 2016)을 움직여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중략) 현실의 불평등과 불의, 부조리함을 끌어안아 집요하게 발언하고자 하는 정세훈 시인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착취에 “저항하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그 이유를 말해주마」) 이유를 시로써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노동시를 답습하는 방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인은 타자를 죽이기 위한 방식을 강제하는 세계의 부조리를 비판하며 더불어 살기 위한 방식으로 공동체적 노동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먹다 남은 찬밥 한 술 제대로/상대편에게 나눠줄 줄을 모”(「밥통」)르는 세계의 폭력에 맞서 정세훈 시인은 “언젠가는 저 죽은 몸통 아래/내밀한 뿌리로부터/애틋한 사랑을 담은/새싹 하나 다시 틔워내”(「고사목」)려 한다. 그 싹을 키워 봄꽃으로 빛날 날로 잇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시집 속으로
고요한 노동
살기 위한, 고요한 노동
어린 들고양이 인적 끊긴 들녘 풀섶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숨죽인 진을 치고 앉아 있네 풀섶 가 가시덤불 속 들쥐의 동태를 숨죽여 응시하고 있네
죽이기 위한, 고요한 노동
웃음 하나로만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가 생을 웃음 하나로만 살아가야 한다면
즐거울 때도 웃어야 하고 슬플 때도 웃어야 하고 그 언제나 웃음 하나로만 살아가야 한다면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함께 아파하며 울며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밥다운 밥
일용할 양식을 위해 땀을 흘려 일한 후
밥상을 가운데 두고 식구들과 함께 오순도순 둘러앉아 따습게 먹는
한 대접의 뜨거운 국과 한 접시의 소박한 반찬과 한 그릇의 김이 나는 밥
먹고 난 후 참 잘 먹었다 위로받는
부담 없는 밥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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