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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깜깜이 선거로 치러지는, 실패한 교육감 직선제

시대일보 | 기사입력 2024/10/16 [09:00]

[사설] 깜깜이 선거로 치러지는, 실패한 교육감 직선제

시대일보 | 입력 : 2024/10/16 [09:00]

[시대일보​]교육감 선거가 제도 설계 취지와는 다르게 정치적 중립성이 실종되면서 선거가 거듭될수록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를 위한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저급한 진영 대결로 변질되고 있어 우려가 높다.

 

지난 2007년부터 직선제로 선출되는 교육감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 개입을 배제하고 있으나 정당 공천을 받지 않는 교육감 후보들의 인지도가 떨어지다 보니 유권자들이 외면하는 ‘깜깜이’ 선거로 치러지면서 오히려 진영 싸움이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연 전 서울교육감이 해직 교사 부당 채용으로 당선 무효형을 받아 치러지는 이번 보궐선거의 사전투표율은 8.28%로 2014년 사전투표제 도입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최종 투표율은 20%를 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터여서 작은 표차로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보수 진영 조전혁 후보와 진보 진영 정근식 후보의 양강 구도 속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표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조 후보는 “좌파 교육 척결”, 정 후보는 “친일 교육 심판” 등 노골적으로 이념을 앞세웠다. 두 후보는 선거 현수막 색상을 각 정당의 상징색과 통일하는 방식으로 정치색을 드러내고 있다.

 

유권자의 외면 속에서 교육감 선거는 보수-진보 진영 대결의 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됐다. 정치색을 배제하려 정당 공천을 차단했는데, 너도나도 ‘보수 후보’ ‘진보 후보’를 내세우는 통에 더 노골적인 진영 선거가 벌어져 온 것이다. 진영이 거의 유일한 선택 기준이다 보니 후보 단일화가 승패를 좌우하곤 했다. 이번에도 보수를 표방한 후보들이 먼저 단일화하자 진보 후보들이 사전투표 도중 단일화를 선언하며 맞섰고, 이에 보수 후보가 제3 후보에게 또 단일화를 제안하는 형국이 펼쳐졌다. 이처럼 정치 공학이 난무하는 현실은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돼야 할 선거를 네거티브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렸다.

 

교육감 선거가 유권자 외면 속에 치러지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선거는 더 심각해 보인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이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은 후 한 달 남짓 기간 교육감 보선과 관련해 이슈가 된 것은 보수·진보 양 진영의 후보 단일화가 사실상 전부였다. 정책 대결은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영 대결뿐이다. 정책 토론회는 일부 후보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사전투표 첫날인 11일 저녁에야 성사됐다. 토론회에서는 교육 정책 대신 상대 후보의 정치적 색깔과 신상 문제를 놓고 설전이 오갔다. 지금 구도라면 교육 정책을 이념과 동일시하는 과잉 정치 성향 유권자들만 후보 개인의 역량·자격은 외면한 채 소속 진영을 보고 투표할 판이다. 그러니 깜깜이·묻지마 선거가 되는 것이고 투표율이 낮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역대 교육감 선거는 중요성에 비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극히 낮았다. 특히 대선이나 총선 등 큰 선거와 함께 실시되지 않은 교육감 선거의 경우 투표율이 10∼20%대에 불과했다. 서울교육감 선거가 단독으로 치러진 2008년 투표율은 15.4%였다. 교육감 선거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후보자의 공약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투표장에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수 유권자가 무관심한 선거에선 조직력이 강한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고 실제 역대 교육감 선거 결과 대부분이 그랬다.

 

막강한 권한에다 책임 또한 막중한 교육감의 지위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울교육감만 해도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관할하는 학생 수만 84만여 명이고, 공립학교 교사와 교육공무원 5만여 명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연간 서울시교육청 예산이 12조 원이 넘는다. 이처럼 서울교육감은 서울 초·중·고교의 교육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로, 대충 뽑아도 되는 자리가 아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국회는 교육감 선출 개선 논의에 착수해 2026년 지방선거에선 지금과 달라진 제도로 뽑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감을 직접 선출하지 않고 광역단체장이 임명하거나 광역단체장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식의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유권자가 후보 이름도, 공약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로 초중고 교육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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