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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한국도자 小史

박정길 기자 | 기사입력 2023/12/17 [11:01]

[데스크칼럼] 한국도자 小史

박정길 기자 | 입력 : 2023/12/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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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길 국장    

[시대일보=박정길 기자]우리 전통문화의 유산중 도자陶瓷는 국보급으로 이어져 전승되어 왔다. 매년 전국 지역에 따라 크고 작은 도자기축제 행사을 펼쳐 조상의 얼과 슬기를 보는 듯하다.

 

도자기의 역사는 신라, 가야시대에서 토기土器을 시초로 조선의 백자기白瓷器에 이르렀다. 토기는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 질그릇이며 도자는 유약을 발라  1,300도 고온에서 구워진 견고한 자기를 말한다.

 

고려초 왕권 과도기로 혼란할때 중국은 청자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고, 안사의 난을 피해 한반도로 이민 온 중국 도공에게 고려인은 다행이 자기 기법을 전수 받게됐다.

 

자기는 남북조시대 월주 越州의 도공 陶工들이 유약을 사용해 처음 만든것이 최초의 초기 청자로 형태, 색갈이 거칠었으나 당시로는 놀라운 발명품이었다. AD3세기 무렵이었고 자기의 역사는 월주가마로 부터 시작됐고 발전을 거듭해 9세기에는 티없는 월주 청자를 만들고 10세기에는 드디어 맑고 우아한 청자를 제조해 중국인들은 이를 비색 秘色 이라 불렀다. 중국인 들은 천년간의 각고 끝에 이룬 비색청자의 기법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으나, 고려 도공들은 중국 이민들에게 자기 기법을 이미 전수받음과 청자를 수입해 연구하여 9세기 후반 청자 제조를 시도, 황해도 배천원산리가마, 용인 이동면 서리가마, 전라도 강진 용운리가마,  고창 용계리가마에서 청자를 만들어 냈다. 초기의 청자는 발색도 누렇고 유액의 질이 저조해  곱게 시유되지않아 미적인 면이 거칠고 부족했다. 도공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100년이 경과하면서 강진, 고창  가마에서 마침내 우수한 청자 제조에 성공하면서 두 지역은 청자의 고향이 됐다.

 

12세기에는  강진 사당리가마, 부안 유천리가마에서 수려한 청자를 제조하여 고려청자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 시기의 명품청자는 목긴병청자를 비롯해 표주박모양, 대마디무늬병,죽순무양주전자, 오리모양병 등 각종 상형청자象形靑瓷가 있다. 

 

고려 도공들은 청자에 만족하지않고 다양한 청자개발 한것이 상감象嵌청자다. 청자에 조각을 하고 홈을 파 은실을 삽입해 무늬를 표현하는 청동은입사靑銅銀入絲기법으로 만든것, 이는 중국에도 없는 고려 도공만이 창출한 것이다. 이후 청자는 거의 상감청자로 대체됐고 문양에는 연꽃, 국화, 모란꽃무늬, 봉황, 학무늬, 구름, 버드나무, 물새 蒲柳水禽을  그린 무늬로 시정적이고 선禪의 고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13세기의  찬란한 청자문화는 원나라의 내정간섭 갈등으로 위축되기 시작했고 1350년경 부터 왜구의 빈번한 출몰로 국가는 백성보호 조치로 해안변에서 50리밖으로 이주하라는 소개정책으로 도공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청자 제조의 마지막을 맞게 됐다. 전국으로 흩어진 도공들은 곳곳에서 청자를 종래의 기법으로 만들었으나 고유의 청빛이 나지 않고 누런색,칙칙한 색갈이 나와 이를 감추는 방편으로 백토를 두껍게 바르고 유약을 칠해 만든것이 분장회청사기 粉粧灰靑沙器준말 분청사기 이다.

 

개발한 분청사기는 관요官窯가 아닌 민요 民窯에서 만든것으로 각지방,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게되며, 종류에는 15세기 전반경에는 상감분청사기,인화印畵분청사기, 15세기 후반에는 박지 剝地분청사기,선각 線刻분청사기, 철화 鐵畵분청사기가 있었다. 16세기 전반무렵에는 귀얄분청사기, 덤벙분청사기가 만들어졌다.

 

도공들은 관의 통제을 벗어나 분청사기에 개성표현이 자유롭고 서민적 분위기가 베어 있다. 분청사기는16세기 조선백자에 밀려 도태 될때 가지 만들어 졌다.

 

분청사기 시기에 중국은 획기적인 발명품 백자를 성취한다. 역성혁명으로 이룬 조선왕조 초기 1467년에 왕실과 관청용 도기 담당부서 사옹원은 경기도 광주에 분원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자기 제작으로  15세기 후반에는 광주 번천리가마에서  상감백자를 처음 만들었고 16세기에는 무갑리, 우산리, 관음리에서 순백자을 만들었다. 1592년 임진왜란의 7년전쟁으로 피폐해진 전후 국가재건 치중으로 도자기에 관심갖일 여유가 없자 17세기 백자는 회색빛을 띠는 조잡한 것이 많았다. 18세기에는 오향리, 금사리, 분원리 가마에서 설백색雪白色백자를 만들고 영,정조시대 문화부흥기를 맞아 조선백자는 세계도자사에 전성기를 맞는다. 19세기에는 유백색 푸른빛의 걸작 백자를 만들었으나  19세기 말기의 백자는 형태, 색갈의 낙후로 분원백자의 가마는 쇄락해지며  고려청자에 이어 조선백자의 찬란한 전통은 종료의 역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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